고양이가 본 인간의 자유
"난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일본에서는 왠만한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유명한 구절이라고 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라는 책을 읽었다. 굉장히 유명하다고 듣고 궁금해했는데 초반에는 고개를 갸우뚱했고 그만 읽을까라는 생각도 몇 번을 했다. 왜 넘길 부분은 넘겨서 보라는지 약간은 이해가 갔다.
한 고양이가 길을 헤매다 주인 선생의 집에 머물게 된다. 주인은 '구샤미' 선생이다. 중학교 영어 교사이며 성격이 편협하다. 구샤미는 아마도 작가 자신이 모델인 듯 하다. 위장병을 앓고 있어 좋다는 약은 다 먹어본다.
그리고 선생에게는 선생 집에 자주 놀러오는 친구가 몇몇이 있다. 갑자기 와서는 시도때도 없이 허풍을 떨어대는 메이테이는 거짓말로 다른 이를 속이는 것이 취미이다. 그리고 메이테이와 자주 함께 오는 미즈시마 간게쓰는 구샤미의 옛 제자이다. 과학자이며 이제는 구샤미보다도 훨씬 잘 나간다. 그가 사랑에 빠졌던 도미코와의 혼사 이야기가 메인 줄거리로 나오기도 한다. 도미코는 가네다의 딸이며 이기적이다. 도미코의 아버지인 가네다는 구샤미가 싫어하는 잘나가는 사업가이다. 그는 구샤미를 괴롭히기도 한다. 가네다의 부인 하나코는 자신의 딸과 간게쓰의 혼담 문제로 구샤미의 집에 왔지만 냉대를 받는다. 구샤미와 메이테이가 그녀의 코를 갖고 한참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도후는 간게쓰의 친구이며 시인이다. 그리고 고양이의 주변 고양이들 중에는 거대하며 교양없는 인력거꾼네 검둥이와 얼룩이라는 이현금 선생댁의 인간 취급을 받는 고양이가 있다. 주인공 고양이가 좋아하는 고양이기도 한데 꽤 앞부분에서 병들어 죽는다.
이 책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화자가 고양이라는 점이다. 첫 줄에 말했던 구절이 유명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듯 하다. 고양이를 화자로 하여 근대인들의 자아를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고양이를 통해서 보는 인간의 모습은 이기적이며 탐욕적이고 스스로를 부정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고양이는 이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고양이가 바라본 인간의 일상을 서술한 것이어서 그 매력을 못느낄 동안은 매우 지루했다. 메이테이의 우스갯소리는 뭐 이런 허풍을 다 떨어?라는 생각을 할 만큼 터무니없는 소리가 많았고 간게쓰 군이 발표 준비를 하던 목매달기 역학 부분을 읽으며 참 요상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고양이가 서술하는 부분에서 고양이는 주인의 마음을 읽을 줄 안다고 하며 어떻게 이런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 묻지 말라고 하는 부분, 그리고 주저리 주저리 말하며 비판하는 모습은 읽다보면 아! 이런 매력이구나! 라며 깨닫게 해준다.
매일 밤 읽지 않는 책을 수고스럽게도 침실까지 운반한다. 욕심을 부려 서너 권이나 품고 올 때도 있다. 지난 번에는 웹스터 대사전까지 가져왔을 정도다. 생각건대 이것은 아저씨의 병으로, 사치스러운 사람이 명품 쇠주전자에서 나는 솔바람 소리를 들어야 잠이 들듯 아저씨도 책을 머리 맡에 두어야 잠이 드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아저씨에게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잠을 부르는 도구이다.
이 고양이는 그저 평화로이 이 집에 남아있는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산다. 그에 반해 주인 구샤미부터 가족, 친구들, 마을 사람들 즉, 인간들 모두는 이기적이며 욕심이 있다.
그들 중 어떤 자는 나를 보고, 나도 고양이 신세라면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하는 말을 하는데, 마음 편한 게 좋아 보이면 그렇게 하면 될 일이다. 그렇게 좀스럽게 굴어달라고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니다. 자기가 멋대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일을 벌여놓고 괴롭다고 연발하는 것은 자기가 불을 활활 지펴놓고 덥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책이 후반으로 갈 수록 작가의 메세지가 잘 전달된다. 고양이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거의 인간화된 고양이가 주인의 마음을 다 읽고 서술하는 듯 하다. 이 책을 지었던 시대는 일본이 근대화가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서양의 근대성이 물밀듯 들어오던 시기에 작가는 자유에 관한 서양문명에 회의적임을 표한다. 사업가 가네다 일가를 비판적으로 표하는 부분이 그 부분이다. 하지만 구샤미와 미학가, 이학자 등 무위도식을 일삼는 무리가 있다. 고양이의 시선에는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세태와 풍속을 한껏 조롱하나 공허한 몸짓에 불과하다. 작가는 지식인의 한심함을 고양이를 통해 조롱한다. 하지만 천진과 위선으로 얼룩진 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슬픈 소리는 작가가 공감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지막 고양이의 죽음은 허무하다. 인간들이 먹다 남은 술을 호기심에 마셨다가 물독에 빠져 죽는다. 고양이의 마지막 한마디는 의연하다.
나는 죽는다. 죽어 이 태평함을 얻는다. 죽지 않으면 태평함을 얻을 수 없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고맙고도 고마운지고.
죽을 때까지도 태평한 고양이의 삶은 작가의 허무주의적인 태도가 보인다. 고양이라는 주체가 강조되지 않고 갑자기 죽는 것 같은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가볍고 유쾌하게 써진 이 소설을 읽으며 나에게 주어진 자유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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